안녕하세요.
이번 글은 본인이 호주의 PKF라는 회계회사에 인턴으로 근무하고, 남겨두었던 소감문에 관한 것입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Working Holiday)를 생각하시고 계시는 분이라면 한번쯤은 읽어보시고, 고민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다시 보니 오글거리네요...
"꿈꾸는 자는 지치지 않는다."
2011.07.18.~2011.12.02.
■ 인천 앞바다에서 세계의 바다에서
지난 날, 작은 언덕에 올라 인문계 국가장학금, 비교적 높은 학점을 받으며 작은 성취에 스스로를 칭찬하던 대학 3학년. 내 자신의 삶의 이유에 대해 늦은 사춘기의 성장통을 다시 겪고 있을 무렵이었다. 봄 내음새 나던 2011년 05월 학교에서 하는 해외 인턴쉽 프로그램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그것을 본 순간 내 가슴 속 박동하던 꿈과 약동하던 젊은 피가 나의 가슴을 쿵쾅쿵쾅 쳐댔다. 나는 주저없이 해외 인턴십에 도전하였고, 공인영어점수 하나 없이 젊음이란 무기만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면접을 보았다. 다행히 공인영어점수는 필요하지 않았지만, 2011년 편입학 경력 때문인지, 3학년 첫 학기 성적이 없던 나는 지원요건 조차 되지 않았다.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1~2학년 때의 학점이 좋아서 그간 성실했다는 점을 인정받아, 회화실력은 형편없었으나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000이사님께 이번이 내 인생에서 마지막일지 모를 기회라는 점을 피력하며 간신히 합격했다는 통지를 받았다. 캐나다 인턴십 면접도 보아 합격하였으나, 비자문제 등을 내가 스스로 알아서 해야하고, 집안사정이 좋지 않아 포기하고, 호주 인턴십을 준비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호주 달러가 캐나다나 미국 달러보다 강세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학교에서 일부의 장학금을 주어 부모님께 보탬이 되었다. 한 쪽에선 대학 등록금 반값에 시위를 하는데, 한쪽에선 등록금 이상의 장학금을 받으며 생활하는 것이 참 아이러니 했다.
호주로 오기 전, 회화실력을 높이려 아침 7시부터 있는 학교 영어회화수업에 빠지지 않기 위해 전철로 1시간을 타고와 수업을 들었고, 수업이 끝나면 필리핀 선생님과 화상영어로 더 공부를 하였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평일3시부터 밤11시까지 영어학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영어공부와 더불어 호주에서의 생활비를 보태려고 노력하였다. 외국인과의 친화력을 높이려, 학교 유학생도우미를 신청하여 중국인 친구를 사귀며 봉사활동도 하였다. 주말에도 외국인 친구모임 동아리에 가서 영어에 익숙해지려했다. 하지만 이렇게 준비했어도 호주에서의 생활은 참으로 쉽지 않았다.
■ 꾸준함을 이길 그 어떤 재주는 없다.
2011년 07월 03일, 15시간 비행기를 타고 호주란 나라에 도착하였다. 설레임 반, 두려움 반으로 나의 호주 워킹홀리데이 생활이 시작되었다. 2주간 다른 학교 학생들과 교육을 받으며 회사에서의 비즈니스 영어, 그룹과제, 인터뷰, 여행 등을 하면서, 어느정도 호주 생활이 익숙하게 되었다.
000에서 PKF란 회계법인 회사에 나를 연결시켜주었다. 전공이 본래 독일어인데, 회계회사에 연결이 되다니, 한편으로 겁도났지만 "모두가 젊음을 부러워 하는 것은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란 생각으로 도전하게 되었다. 회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왔기 때문에 정말 간단한 업무들을 주로 보았다. 복사, 스캔 심지어 커피 심부름까지 도맡아 하였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회계사님께 회계원서 책을 빌려 차근차근 보고있으며, 가져왔던 노트는 한번 알려주신 것을 까먹지 않기 위해 글자로 도배가 되어갔다. 다른 인턴들이나 다른 회계사님들은 넥타이를 메지않고 다녔지만, 좋은 기회를 얻으려, 나는 항상 거래업체 이사님들이 오시면 내가 한번이라도 맞이하기 위해, 답답한 넥타이도 꽉꽉 조아매며 다녔다. 기회가 오지 않는 다면 내가 그 가능성을 찾아나서야 했다.
회계사님들과 자유로이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점심시간. 나는 이 시간도 잘 활용하려 노력하였다. 쓸데 없는 안주거리 이야기뿐만 아니라, 현재 호주 비즈니스업에서 정세는 어떻게 돌아가며, 클라이언트와의 관계는 어떠하고, 회계사님들이 마케팅을 할 때는 어떻게 하는지, 호주와 한국과의 비즈니스 마인드라든지, 같은 업무는 어떻게 다르게 처리를 하는지 등, 이 시간마저도 얻어가려고 하였다.
커뮾터에 대해서는 어떠한 자격등도 없었고, 게임만 하였던 터라, 소프으웨어 다루는 것엔 서툴렀다. 너무 서툴러서 실수도 많이하고 눈치도 많이 보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잘하고 모든 일이 순조롭다면, 호주에 있는 동안 '나만의 이야기'는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순간순간은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오히려 실수를 즐기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는 실수하지 않기 위해 잘 기억해두었고, 종이에 다시 받아적었다. 이렇게 하나, 둘 잦았던 실수들이 고쳐지고, '숫자'에 익숙하지 않아 긴장 속에서 생활하던 내 모습은 어느덧 여유를 찾으며 보내게 되었다. 무급인턴으로 경제적 부담이 많았었지만,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어느정도의 돈을 받으며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감사했다.
■한/중/호 민간 외교관, 문화교류의 선구자.
언어의 장벽에 좌절하였지만, 다행히도 나는 아시아지역담당 부서에서 일하게 되어, 모두가 한국인 이었다. 한국어로 모든 의사소통이 가능했지만, 영어를 쓰지 않는다는 환경이 조금은 아쉬웠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한국에서 하던 필리핀선생님과의 화상영어를 하였다. 아마도 호주에와서까지 필리핀 선생님과 화상영어를 하는 사람은 청혁이형과 나뿐이었을 것이다. 업무가 끝나는 수요일 오후와 일요일 오후에는 현지 호주인교회를 가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성경공부를 하며 부흥회 및 예배도 드렸다. 호주 사람들은 정말 친절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호주인들과 소통하며, 이들의 문화에 많이 배울 수 있었고, 타지에서 또 하나의 가족이 생겼다.
한 호 문화교류를 위해 클럽에도 다녀보았다. 하지만 나는 원칙이 있었는데, 영어를 써보자는 것이었고, 말을 한마디라도 걸어보아 내 안에 Sales라는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쑥맥에 한 마디도 걸어보지 못하고, 오래 못가서 흥미를 잃어버렸다.
우연치 않게 알게 된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게 되어, 평일 저녁에는 물론 주말에도 만나가며 영어를 사용하려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내가 단 한가지라도 배울 수 있고, 그것을 다른 곳에 쓸수만 있다면 무조건 달려나갔다. 돈이 없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앛미은 굶어가며, 점심은 오뚜기 3분요리나 고추장에 밥을 비벼가며, 저녁엔 외국인 친구들과 20불 30불짜리 스테이크를 썰어가며, 그렇게 가능성이 찾아나섰다. 그렇게 하여, AMP라는 보험회사에서 9년간 회계사로 일하는 친구, 호주 4대 은행인 Wespac에서 Analyst로 일하고 있는 친구, 호주 부동산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 Sydney Water라는 국가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 등 나에겐 한마디로 별들 틈 속에서 가능성을 찾았다. 후에 나는 이 친구들에게 내 추천서를 교정받기도 하고, 영문이력서를 첨삭까지 받을 수 있었고, 주말에는 체육관을 빌려 동호회처럼 실내 농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꾸준한 나에대한 신용으로 인해 인턴십이 끝나는 날 부터 출국 비행기를 타는 날까지 무료로 홈스테이를 할 수 있는 좋은 제안도 받았다. 후에 이 점은 내가 보험회사나 신용을 필요로 하는 기타 여러 회사의 면접을 보았을 때 좋은 나만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교회에 다니며, 호주의 한인사회에서도 생각을 해보았다 워킹홀리데이로 온 유학생들과 그들이 머무는 한인주인들 간의 마찰 또는 상점과는 저마다의 입장이 있었다. 중국인들은 잘 뭉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로에게 피해를 준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로 자신의 꿈을 찾으러 온 청년들은 각자가 민간 외교관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으로서의 저력을 보여주어야 하지않나 싶다. 이것은 비단 나를 위함임과 동시에, 후에 꿈을 찾아 호주에 땅을 밟을 다음의 청년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 이루어지는 꿈의 방정식
꿈이란 추상적인 절대원칙과 직업 조건이라는 미지수 사이에서의 끊임없는 방정식이다. 내 꿈의 절대원칙은 다수의 행복 이제는 변해버린 회계사라는 직업. 인턴십을 통한 나의 조건 등은 꿈을 이뤄가는 최적의 방정식이었다. 물론 이점은 끊임없이 변화할 것이라 생각이 든다.
회화와 리스닝에 정말 많은 문제가 있었음에도 인턴십을 오기 전 3년 이라는 편입수험기간동안, 미국수학능력시험에나 나오는 SAT 단어집을 100번이나 넘게 돌려 보았고, 심리학, 철학, 경영학, 경제학, 정치학 등등 타임지나 이코노미스트, 미국대학교수들의 논문들이 문제화되 나오는 배경지식들을 수천지문을 보면서 쌓았다. 이것이 지금 번역을 할 때나, 호주 신문을 읽을 때 별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오기 전, 한국에서 외국인스터디모임에 주말마다 나가서 외국인들을 만나며, 한국문화를 어떻게 하면 더 잘 설명해줄지의 고민이나, 학교에서의 외국인유학생 도우미를 신청하여 쌓았던 경험등은 호주 사회에서의 친화력과 신용을 쌓는 것에서의 준비를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잠깐이지만, 한 때 뮤지컬배우를 꿈꿔 다녔던 학원등의 경험은 외국인 친구들에게 부끄럼없이 나의 재주를 부려줄 수 있었고, 급속도로 친할 수 있게 되는 좋은 경험이었다.
학교에서 하는 취업특강이나 000에서하는 특강들은 꾸준히 나가 반드시 명함을 받았고, 그 날이 지나기전 반드시 감사의 이메일을 써서 아짂까지 연락이 되는 취업 선배들과의 꾸준한 교류 또한, 나는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주관적인 증거와 그 열정을 인증서나 확인서 또는 추천서로 남길 수 있는 객관적 증거를 만들었고, 만들어 가고 있는 준비가 되었던 셈이다. 또한, 한국에서의 학원 아르바이트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상담해주고, 복사,스캔 등등의 일들이 후에 인턴십에서의 빠른 적응력을 키워준 셈이다.
나는 알지 못하였지만, 인생의 한 발자국, 한 발자국들이 급하지 않지만,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깊게 느끼게 해주는 순간들이었다.
기도하는 삶을 통해서, 내 삶의 미션을 항상 생각하고 있었고, 감사와 회개 그리고 간구의 기도를 드리며 외롭지만, 외롭지 않은 나의 꿈을 이루어 가고 있음을 확신하였다. 모두가 외로워 연애를 하고, 회사에서 돌아오면, 놀궁리를 하는 틈속에서, 내 자신을 연단하였고, 반드시 배운 점은 포스트 잇에 작성하여 미래에 투자를 하였다. 나무에 나의 새집을 짓지 않으니 나뭇가지는 계속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고, 지금 내 삶에 미션이 없으니, 흔들리는 것이다.
■ 꿈꾸는 자는 지치지 않는다.
시간은 총알처럼 지나가서, 한 달 남은 시간, 무언가를 변화시키기엔 역부족이라 생각되었지만, 000 이사님을 찾아뵈어 여러 말씀을 들으니, 닥치고하면 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 지구엔 내가 모르는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다. 만화 드래곤볼에서 배지터가 손오공을 이기지 못하는 이유는, 배지터는 자기자신을 위해 싸우지만, 손오공은 자신의 가족을 이 지구를 위해 싸우기 때문이다. 오롯한 발자국을 따라가는 길은 힘들지만, 자신의 인생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닥치고 무엇을 해야할 줄 알 것이다. 한달이라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던 이유는 그렇기 때문이었다.
호주에서 외로움에 싸워가는 시간을 이겨내며, 청춘을 투자했다. 나는 무언가를 할 때, 지금 내가 외롭지 않다면 잘못 가고 있음을 편입을 통해 배웠다. 단어 한개가 인간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처절하게 배웠다. 숫자하나가 인간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는지 PKF 인턴을 통해 배웠다. 사람이 투자한 만큼 얻지 못하기 때문에 시험 때 컨닝을 하는게 아닐까. 정직하게 투자하고 외롭게 방구석 몰래 청춘을 바치는 인간은 자신의 인생에 깊이 생각하고 있음이다. 나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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