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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이번 포스팅은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인 로레알(L’Oréal) 파헤치기 1편에 대한 포스팅입니다!
글로벌 화장품 최고존엄 로레알에 대해서는 파도파도 끝없는 이야기들이 나와서 각각 편으로 나눠서 포스팅하겠습니다..!
즈아~즈아~가즈아~!
화학자인 로젠 슈엘러(Eugene Schueller)에 의해 1907년 프랑스 파리에서 설립된 로레알은 그 후 100년 동안 프랑수아 달(Francois Dalle) 회장, 샤를르 즈비악(Charles Zviak) 회장, 오웬 존스(Lindsay Owen-Jones) 회장 시대를 거쳐 현재는 제 5대 회장인 폴 아공(Jean-Paul Agon) 회장에 이르기 까지 단지 5명의 최고 경영자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적의 부침에 따라 경영자의 재임기간이 짧은 경쟁사에 비해 단지 5명만으로 100년 기업을 최고의 기업으로 이끌어 오고 있습니다.
로레알(L’oreal)은 슈엘러가 만든 첫 브랜드 ‘로레올(Auréole 빛의 고리라는 뜻)'에서 따왔다고 합니다다. 이 로레알 염색제는 1910년대에 유럽시장에 수출됐고 1920년대 미국에 이어 1940~50년대에는 남미·러시아·중동·아프리카까지 시장을 넓혀갔습니다.
특히 1960년대, 스프레이, 샴푸 등의 사용이 활성화되면서 모발과 두피에 대한 관리의 니즈가 형성될 무렵, 프랑수아 달 회장은 신개념의 헤어트리트먼트제품의 개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피부를 가꾸듯 모발을 가꾸세요(Take care of your hair and scalp as you take care of your skin)’이라는 초기 슬로건에서 표방하듯이 ‘에스테틱(Esthetic)으로서의 헤어케어’를 강조해 왔습니다.
프랑스 파리 시내에서 차로 30분 거리인 클리슈에 위치한 3층 연구소인 로레알의 ‘샤를 즈비악 센터’는 그를 기려 명명되었으며 모발에 대한 연구가 가장 활발한 곳입니다.
린제이 오웬 존스(Sir. Landsay Owen-Jones) 회장은 소규모 프랑스 모발염색업체로 출발한 로레알을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화장품 업체로 키운 천재적 경영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3세 때인 1969년에 로레알에 입사하여 지난 1988년 42세의 젊은 나이로 로레알 그룹의 최고경영자(CEO) 직에 오릅니다.
오웬 존스 회장은 입사 당시 로레알의 간판브랜드인 돕(Dop)의 영업담당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하지만 업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 이듬해 벨기에 지사를 지원했는데 이곳에서 그는 능력을 십분 발휘했습니다. 현지 정착 1년도 채 안돼 로레알 헤어케어제품은 일약 베스트셀러에 올려놓은 것입니다.
당시 그를 눈여겨본 프랑스와 달 회장은 1972년 그를 본사로 불러 프랑스 시장 헤어컨디셔너 재런칭 프로젝트를 맡깁니다. 이때 로레알은 엄청난 광고비를 쏟아 부으며 신제품 헤어컨디셔너를 출시했지만 시장반응이 없어 그만두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는 즉시 대대적인 광고를 중단하고, 1회용 샘플을 나눠주는 직접 마케팅으로 전환했습니다. 헤어컨디셔너가 무엇인지 모르는 소비자들에게 아무리 광고를 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판단에서입니다. 소비자들에게 샘플을 사용하게 한 후 시장으로 끌어내야 한다는 게 그의 전략이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전략은 성공적이었고, 이를 계기로 프랑스와 달 회장과 독대할 정도로 진격적인 신임을 얻었습니다.
프랑스와 달 회장은 이탈리아에서 귀국한 오웬 존스를 장차 자신의 후임자로 점 찍어 놓고 미국지사 코스메르를 맡겼습니다. 일종의 마지막 테스트 같은 것이었습니다. 1981년 뉴욕에 도착한 그는 미국 시장의 화장품 유통체제는 백화점을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파악하고 고급브랜드 랑콤을 간판브랜드로 내세웠습니다. 유럽에서 펼쳤던 전략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고급브랜드의 부각전략은 로레알이 미국 시장에 뿌리를 내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1988년 로레알 사외이사진은 만장일치로 린제이 오웬 존스를 그룹회장으로 임명했습니다. 1969년 로레알 입사 이래 단 한번의 실수도 없이 승리만 거듭한 그였기에 언젠가 그룹회장이 되리라는 것은 이미 예상된 바였지만, 42세 젊은 영국인이 프랑스 기업 경영권을 맡는다는 것은 대단한 뉴스였습니다.
그는 로레알의 최고경영권을 손에 쥐자 이스라엘 시장 개척이라는 새로운 모험을 펼쳤습니다. 주주들과 사내 경영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진출을 결정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로레알은 아랍국가 소비자들의 보이콧이 두려워 이스라엘과는 전혀 거래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결정은 옳았습니다. 우려했던 아랍국가에서의 불매 운동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서는 천사기업으로 대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는 1990년대 초반 로레알 세계화 전략을 발표하며 “프랑스 로레알은 로레알 그룹의 일개 지사에 불과하다”는 폭탄발언을 했습니다. 이는 과거 생산에서부터 마케팅, 유통,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를 프랑스에서 하던 것을 지역별 특성을 고려해 현지화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기업 인수합병(M&A) 전문가로 알려진 오웬 존스 회장은 1989년 헬레나 루빈스타인과 피부보조 치료 화장품인 라 로슈-포제를 인수하고, 1993년 레드켄, 1996년 메이블린, 1998년 소프트신, 2000년 키엘, 2001년 카슨 등 미국 브랜드를 잇달아 인수했습니다. 2003년 슈에무라(일본)와 미니널스(중국)에 이어 중국의 고급 브랜드인 위에사이를 인수하는 등 각국의 경쟁력 있는 브랜드를 로레알의 지붕 아래로 끌어모았습니다. 2006년 바디샵을 인수하여 자연주의 화장품 시장에 교두보를 확보했으며 전문매장 중심으로 재편되는 화장품시장을 선점하게 되었습니다.
이상,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인 로레알(L’Oréal) 파헤치기 1편에 대한 포스팅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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